2012년 11월 여보님의 "서예" 후기

개인적인것/소중한사람들 2015. 3. 24. 17:41 Posted by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

서예의 시작

매주 수요일, 금요일 오전 10시 선생님의 출석확인으로 호명되는 내 이름에 '네'라고 대답한지도

벌써 5개월째이다. 지인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이곳 부산까지 시집을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던 경기도 아가씨가 부산 새댁이 되었다. 누군가는 타향살이라고 했다.

고달프고 외롭다는 타향살이......

 

낯설고 무료한 공간에서 하나의 탈출구로 발견한 것이 '캘리그라피 (Calligraphy-'손으로 그린 그림문자)'

였고 문방사우(서재(書齋)에 꼭 있어야 할 종이, , 벼루, )부터 시작한 나의 배움은 자연스레 서예의

기초 도구와 함께 하게 되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글씨란 쓰는 사람의 인품까지 담아낸다는 것을 미약하지만 깨우칠 수 있었고,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서예를 통해 기초부터 다듬겠다는 생각으로

서예라는 미지의 세계에 몸을 담게 되었다.

 

왼손잡이, 오른손으로 붓을 잡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밥을 먹고, TV리모컨 버튼을 누르고, 뭐든 왼쪽주머니에 넣는, 심지어

발도 왼발잡이인 나에게 서예는 오른손으로 해야만 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획을 쓰는 서예를 왼손으로 하게 되면 획의 시작이 보이질 않았다.

서예는 평생 왼손잡이로 살아왔던 나에게 뛰어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지만 왼손으로

바른 자세가 잡히지 않음을 알기에 오른손에 붓을 잡았다.

 

서예에 대한 나의 갈망은 곧 글씨의 획이 나의 오른손을 통해 그려지는 결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31년동안 써왔던 고집쟁이 왼손의 습관들은 서예를 할 때면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려

서예의 시간만큼은 나를 구속하지 않았다.

 

오른손에 붓을 잡던 그날부터 새하얀 백지 위에 '오른손 서예놀이'라는 주제로 새롭게 무엇인가가

새겨지고 있다. 생각과는 다르게 힘들다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분명히 시작은 힘들었을 텐데 지금은 좋은 기억만 남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5개월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고집쟁이 왼손에게는 먹을 갈게 하고,

오른손에게는 글을 쓰도록 하는 공평한 임무를 주었다.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뭐든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걸 알지만 서예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걸 매일매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매일 숙제가 있는 서예수업, 출석체크가 끝나고 숙제검사를 맡는다. 선생님께선

글씨를 보기만해도 남편이랑 싸우고 썼는지, 드라마를 보면서 썼는지, 글씨를 쓰는 그 순간의

마음이 획 안에 살아나모두 아실 수 있다 하셨다.

 

그만큼 글 쓰기 이전에 마음의 준비 또한 소홀할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한 말씀인듯하다.

재료의 준비 또한 중요하지만 서예에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가 중요한 것 같다.

먹물준비 또한 그러하다.

벼루에 물을 담아 먹 갈기를 한다. 생각 없이 시간만을 체크하며 먹을 갈고, 먹물을 찍어

하얀 화선지에 선을 그어보면 어느새 그 위의 까만 먹물은 몽글몽글 번지기 시작한다.

적당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먹을 간다.

 

5분에 한번씩 먹물을 체크해본다.

한 시간 정도를 갈아야 글씨를 쓰기에 적당한 먹물이 된다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바심에 사로잡힌 내 먹물은 제대로 될 리가 있을까?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초보인 나에게 글쓰기에 적당한 검은색 먹물의 농도는 눈으로 식별할 수가 없다.

 

직접 붓으로 써봐도 늘 다른 먹물의 농도가 된다.

시간단축을 위해 손에 힘을 주고 먹을 갈은 먹물을 쓰는 날에는 붓은 뻣뻣하기 그지 없었다.

먹물의 입자가 굵어져 부드럽지 못했다.

 

그저 먹만 갈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먹을 갈 때에도 일정한 힘을 사용하도록 집중하면 다른 잡생각이 들지 않는 명상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지겹다 했던 먹 갈기의 한 시간이 지겹지 않은 신중한 한 시간이 되어 조금씩 내게 돌아오고 있다.

물의 양에 따라, 먹을 가는 시간에 따라, 먹을 쥔 손의 누르는 힘에 따라 먹물의 농도와

상태는 매번 다르다. 아마도 먹을 가는 일은 서예공부에 있어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다.

 

선생님의 글씨

선생님의 글씨에선 부드러움과 힘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매번 진도에 맞춰 선생님의 체본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새하얀 화선지에 검은색먹물을 머금은 붓이 닿는 그 순간, 지켜보는 학생들은 미동도 없으며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모두 선생님의 글씨에 푹 빠져있는 듯하다. 붓에 먹물을 묻히고

 다듬기는 한 글자에 한번씩 반복된다. 붓을 다듬는 그 순간에는 숨소리도 감탄도 한숨도 들려온다.

선명한 검은 글씨가 화선지를 채우고 내 눈앞에 가득 찰 때면 새롭게 배우는 그 글씨에 설레고 신이 난다.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하세요!

 

잠깐의 적막이 흐른다.

 

너무 쉬워서 질문이 없으신 가보죠?

하고 미소 지어 주신다.

 

보는 건 쉽지만 따라 쓰기가 쉽지 않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막상 내 오른손 안에 들린 나의 붓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함에

한탄하는 듯 하다. 1-2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선생님의 글씨를 따라갈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글씨엔 흉내 낼 수 없는 선생님의 서예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마라 그 마음이 방해구나

 

강의실 한쪽 벽에 걸린 선생님의 작품을 보며 매일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도 잘 쓸 수 있겠지?

 

이건 잘 쓰려는 욕심이 아닌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다.

 

평생의 취미

서예는 누구나 알고 있고, 쉽게 배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평생의 좋은 취미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워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30대의 시발점에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서예를 배우고 있는 지금, 너무 즐겁고 매 순간

행복하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할 숙제라고 했다. 좋은 취미이자 숙제가 될 서예는 평생을 배워도

 끝이 없을 것 이다.

 

 서예공부를 하면서 타향살이(?)의 서러움도 잊은 지 오래다. 언젠간 내가 쓴 붓글씨를

내 아이들이 보게 되는 그날이 오면, 그냥 엄마가 아닌 서예를 하는 멋진 엄마가

되어있을 것이다. 아이에게도 서예를 알게 해줄 멋진 엄마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열심히 붓을 들어 정성 가득 담아 글씨를 써본다.

 

나를 위해 배운 서예가 나의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