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13코스 (1/3) - 조카와 떠난 제주올레

여행/제주올레트레킹 2009. 7. 31. 21:25 Posted by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코스경로 (총 15.3km, 4~5시간)

용수포구(절부암) - 충혼묘지 사거리 - 복원된 밭길 - 용수저수지 입구 - 특전사 숲길 입구 - 고목 숲길 - 고사리 숲길 - 낙천리 아홉굿 마을 - 낙천잣길 - 용선달리 - 뒷동산 아리랑길 - 저지오름 정상 - 저지마을회관


말썽쟁이 조카놈 때문에 다시 찾은 제주도 올레길위의 조카와 나, 얼마나 말썽을 피웠는지 누나가 무조건 데리고가서
고생좀 시키라는 말때문에 누나에게 찬조금을 좀 받아 2주만에 제주도 땅위를 다시 밟았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의 나이에 무서운 삼촌때문에 첫날부터 15.3KM를 걸어야 했던 조카 상현이
힘들었던지 아니면 내가 옆에 있어서인지 사진속의 표정은 썩 밝지 못하다.
어리광을 피우지 못하도록 엄살조차 용납하지 않았었고 포기라는 단어자체는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었었다.
자기가 입을옷과 잡다한 자기물건은 자기가 직접 들도록 조카에겐 조금 큰 배낭을 주었으며 먹을 음식과 먹을물은
직접 챙기도록 했으며 목이 말라도 나의 여유분 물은 주지 않았다. 언제나 원하면 먹을수 있던 그 물의 중요함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었고, 언제나 원하면 가려서 좋아하는것만 먹던 조카에게 여기엔 이거말곤 먹을게 없으니
먹던지 말던지 알아서 하라고 하기도 했다. 배고프면 좋아하던 음식을 떠나 무조건 먹어야 덜 힘들다는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언제가는 원하는것만 먹을수 없다는걸 알려주고 싶었다. 뜻은 좋았으나 올레길 위에서 조카에게
비친 삼촌이라는 존재는 아마 악마같이 보였으리라. 어려도 남자니까 울음조차 허용하지 않았었고
조카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기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았었고, 갈림길에서만 잠시 기다려주었다.
조카가 나때문에 기가 너무 죽을까봐 그래도 영민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어리광을 다 받아주지말되 조카가 가끔 기댈수
있는 자리는 마련해 주었다. 지금생각하면 약간의 미안함은 있지만 결과적으론 좋은 경험을 시킨거 같다.


조카 덕분에 다시 제주도 땅위를 밟았다.
남겨둔 13코스 이렇게 빨리 오게 될진 몰랐지만 나의 악연인지 오늘도 여전히 하늘은 맑기만 했다.
따사로운 햇살은 올레꾼의 가장큰 적! 나는 적과의 동침을 즐기려는것도 아니지만 오늘역시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올레길을 따라 이미 제주도 반바퀴를 돌아서일까 제주공항에서 13코스 출발지까지는 50분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미 올레길에 적응된 나의 두다리는 가볍기만 했으며 즐거웠고, 조카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간다.
이렇게 새벽비행기를 타고 다시찾은 제주도의 첫날 13코스는 시작되었다.


12코스를 돌며 용수포구쪽과 버스정류장을 따라 걸으며 13코스의 일부를 걸었기때문에 버스정류장에서부터
13코스를 시작했다. 한참을 걸으니 복원된 밭길이라는 올레표지판이 나왔다 영민이에게 부탁해서 조카와
사진을 찍었는데 이녀석 표정이 밝지 못하다. 13코스는 개장한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표지판자체가 너무 잘되어
있었다.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이 이쁜 표지판들이 훼손되어지는건 아닐지 살짝 걱정이 된다.

전에 현정이에게 13코스가 정말 좋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현정이 너!! 둥지에서 기다렷!!!
13코스도 맑은날은 조금 피하는게 좋을듯한 코스였다. 아아....그렇다고 안좋다는건 아님~

용수 저수지를 가기전 재를 지내는듯한 조그만한 재단이 눈길을 끌었다. 영민이와 조카는 지나치는듯했지만
재단위를 감싸듯 나무가지가 에워싼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탁트인 용수 저수지의 풍경을 보니 중학교때 곧잘 뒷산위에 혼자 붕어낚시를 갔었던 그 저수지가 겹쳐졌다.
생각보다 넓은 저수지와 저수지위로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이미 더 탈것도 없는 나의 피부는 햇빛가리개 따위....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좀 걸어라고 했지만 카메라만 갖다대면 영민이의 저 어색한 표정....좀 어떻게해봐...
몰래 찍던가 해야지 ㅋㅋ

저수지를 돌아나가며 풀숲에 파묻혀 자연과 하나가 된 경운기를 발견했다.
어느 할아방이 주인인지 몰라도 주인을 잃고 마을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으리라...

특전사들이 길을 냈다는 특전사길의 초입부에서 인상쟁이 조카 한컷.

조카에게 올레길을 찾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영민이랑 내가 사진찍고 놀때는 혼자 저만치 걸어가버린다.
똘똘한 놈이라서 길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말만 많이 들었던 특전사 숲길....아...간판만 이뻣다 ^^;;

사람마음이 간사한건지 1~12코스 올레길을 걷다보니 이런 울창한 숲길에도 약간은 무덤덤해진...나 자신이 간사하다
그러나 부산으로 돌아가면 다시 그리워 지겠지

숲길을 끝날때쯤 길에서 조금 떨어진곳에 민가가 한채있었다. 안테나 선이 있는걸보니 사람이 사는것 같기도 했고
살지 않는거 같기도 했고...

특전사 숲길을 걷다보니 11코스 막바지의 곶자왈이 생각났다. 그곳보다 이곳이 아주 밝은거 빼곤 분위기가 비슷한듯
느껴졌는데...곶자왈은 혼자걷기 좀 무서울껄?? 하지만 숲 자체는 곶자왈이 정말 멋지다.

특전사 숲길을 지나서 고목나무 숲길도 나오고 곧 터널숲길도 나왔으나 숲길을 즐길만 하면 바로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고 또 숲긿이 나오고....숲길이 너무 짧은게 너무 아쉬운 13코스였으며 아쉬운 길이였고 아스팔트 도로
2개 사이의 숲길을 갈지자로 빙빙 돌고 있는 느낌이 나서 약간 기분이 나빳다고 해야하나?
숲길이 좀더 길었다면 좋았을텐데...

터널숲길을 지나서 잠시 휴식을 취했으며 태양의 뜨거움은 아스팔트 도로를 마음껏 달구어 놓았으나 영민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저 앉아 쉬고 있었으며 조카 상현이는 자기가 얼마나 걸어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에 많은
관심이 있는듯 13코스 안내책자를 보며 혼자 한숨 쉬기 바쁘다.

13코스는 생각보다 포장도로 비율이 아주 높아서 오늘처럼 날씨가 맑은 날은 조금 고역이 될듯했다.
제 블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항상 이런날씨에 올레길을 걸었기에 머 내운이지 하고 걸었지만 영민이와 조카는
쉽게 지치는듯했으며 조카 상현이는 자기가 가진물이 거의 바닥이 들어나 물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몸은 힘들지만 멋진 사진은...맑은 날에 얻을수 있다. 구름 이쁘다...

저기멀기 마을이 하나둘 보이자 상현이가 삼촌 먹을때 없어요, 슈퍼없어요? 라고 연이어 물어봤지만..저 마을엔
그런거 없었다.

상현이의 늦은 걸음걸이 때문에 낙천리 아홉굿 마을에 점심때가 좀 지나서야 도착했다.
영민이가 참고 참았던 화장실을 향해 뛰어갔고 상현이와 나는 이곳에서 좀 쉬고 있었으니 잠시후 영민이가 부르는
소리에 상현이가 달려갔다가 방긋 웃는얼굴로 돌아왔다. 삼촌....여기 시원한 먹을물 있어요...
정말 좋았던가 보다..

낙천리 아홉굿 마을에 큰의자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멋지다.